성경사전01 히라~힛타이트 성경 사전

히라 : Hirah(인명)
(hr;yji, Hirah)「고상함」
아둘람 사람으로 유다의 친구이다(창 38:1,12). 아둘람은베들레헴의 서남 20km의 세벨라(Shephelah)에 있는 길베드 이드 엘마(Khirbet `Id elMa )라는 설이 있다. 아마 유다는 아둘람 사람과 히라와 동맹을 체결하여 세력을얻었을 것이다.
히람 : Hiram(인명)
(!r;yji, Hiram) 「형제(신)는 높이 들렸다」 또는 「높이 들린 자의 형제」의 단축형이다.
[1]두로 왕(BC 968-935 재위)으로 다윗과 솔로몬 시대 왕이다. 당시 베니게는 상업국으로써 발전하여 히람은 대대적으로 건조물을 조영하고, 종교의식을 성대히 하여세력을 신장하였다. 히람과 이스라엘 왕과의 우정은 상호 필요에서 생긴 것 같은데,두로는 농산물을 필요로 하였고, 이스라엘은 기술을 구한 것이다. 그는 다윗 시대에목재, 목수, 석수 등을 보냈지만(삼하 5:11), 그것은 다윗이 예루살렘에 입성하고나서부터라기보다 블레셋 사람에 대한 승리를 확실히 하고나서 부터일 것이다. 그로부터주변 제국은 다윗에게 주목하기에 이른 것이라 생각된다. 솔로몬 시대에도 히람은 목재 등을 공급하고, 솔로몬은 보리˙기름˙포도주 따위를 공급했다(왕상 5:1-11,대하2:1-16). 히람은 현군인 듯하다. 이방국에 대해 침략이나 전투를 일삼지 않고, 상업으로 국민의 생활을 풍성케한 평화의 왕이다. 솔로몬은 두로 왕의 축하 사절에 뒤이어답례 사절을 보내면서 건전(建殿)에 협조해 줄 것을 부탁했던 것이다. 히람의 백향목등 건재 제공에 솔로몬은 식료품으로써 밀 2만 석, 기름 20석을 주었던 것이다. 당시건조물에는 베니게의 영향이 많이 작용하였다고 한다. 히람은 또 솔로몬의 무역을 도왔는데, 선원 뿐만 아니라 배도 제공했다(왕상 9:26-28,10:11,대하 8:17,18,9:10). 물론 히람 자신도 큰 도움을 받았으며, 솔로몬의 항구인 에시온게벨에 그의 선단(船團)을 두는 권리를 얻었음에 틀림 없다. 다만 역대기가 "다시스로 다니며"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은 열왕기의 "다시스 배"를 잘못 해석한 것으로, 다시스는 베니게의 식민지였으며, 이 경우의 다시스는 배의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배의 종류를 가리킨 듯하다(대하 9:21,왕상 10:22). 솔로몬이 히람의 협력에 은혜를 갚아 북갈릴리의 20 성읍을 주었을 때, 히람은 기뻐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사실은 솔로몬이 대건축을 계속하여 재정이 궁해져 그것들을 팔지 아니 할 수 없었을 것이다(왕상 9:10-14). 그것은 히람에게 과히 좋은 매물(買物)이 못된 듯하다. 역대하 2:3, 11 등에는 `후람'이라 되어 있다.
[2]두로 사람으로 솔로몬의 성전 일을 하기 위해 두로에서 초청한 놋점장(店匠)이다(왕상 7:13). 여기서는 그의 부친은 두로 사람이고, 모친은 납달리 지파 과부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역대하 2:14에는 모친은 단 지파의 한 여인이라고 하였다. 그는 명공장(名工匠)이었으며, 지혜가 있었으며, 솔로몬의 신뢰를 받아 성전의 물두멍˙부삽˙대접˙솥˙부삽 등 많은 기구를 만들었다(왕상 7:40,45). 역대하 4:11,16에서는 !r;Wj(huram), Huram, 역대하 2:13에서는 ykia; Qr;Wj(huram'abi). Huram abi의 형(形)을취하고 있다. 히람아비(Huram-abi)의 형은 열왕기상 7:13의 `히람'과 회막 건설에 진력한 단 지파의 `오홀리압'(출 31:6)의 `압'과 결합한 어형(語形)이라고 간주하는 사람이 있다.
히르카노스 : Hyrcanus(인명)
[그] @Urkano"(Hyrkanos)[라, 영] Hyrcanus
1. 도비아의 아들로, 예루살렘 성전에 막대한 재보를 축적한 결과, 시리아왕 셀레우코스 4세 필로파토르(Seleucus IV Philopator)의 대신 헬리오도루스(Heliodorus)가 그 재보를 약탈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침입한 일이 있게 한 일이 있었다(II 마카 3:11). 당시 히르카노스는 신분 높은 인물이었으나, 이것은 개인명이라기 보다는, 형용적 이름이었던 듯하다. 그러나 유대인 사이에 이 이름이 널리 불리어졌던 것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오쿠스(Artaxerxes Ochus)가 많은 유대인을 히르카니아(Hyrcania)의 땅에 이주시킨 역사적 사실에서 설명된다.
2. 요하네스 히르카노스(요한 히르카누스) [그] !Iwannh" @Urkano"(Ioannes Hyrkanos) 135-104재위.하스몬계의 지배자 시몬의 제3남으로, 아버지의 후계자가 되었다. 그의 통치는 유다판도의 확산에 의해 유명하다. 그의 때에 유다는 시리아의 세레우코스 왕조에서 완전 독립했다. 그는 처음에 바리새파와 협조했으나, 판도가 확대됨에 따라 사두개파와 제휴하게 되었다. 그의 정치의 주력은 이 사두개파가 차지했다. 그러나 전체적인 면으로 볼 때 그의 통치는 잘 되어서 요세푸스(→)로 부터 그 업적에 대한 찬사를 받을 정도였다(Antiq. XIII. x. 7).
3. 히르카노스 2세 [그] @Urkano" II [, 라] Hyrcanus II 대제사장으로서 전 78-69와63-40재위.전40년 파르티아군이 예루살렘에 침입한 때, 히르카노스 2세는 잡혀 귀가 잘려 불구가 되었다. 그러나 히르카노스 2세는 바벨론의 유대인 공동체 사이에서 비상한 존경을 받았다. 그래서 히르카노스 2세에 대한 유대인들의 귀국 여망은 더욱 더 해지고, 이때 왕위를 얻은 헤롯은 정략적 의도하에 그를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하여 처음에는 후대하였다. 그러나 후에는 정치적 긴장관계로 인해 헤롯은 전31년,반역혐의를물어히르카노스 2세를 살해했다.
히브리사람, ~인(人) : Hebrew, Hebrews
[히] [形] yrib][ii(ibri), !yrib][i(ibrim),pl. [그] NT @Ebraio"
[영] Hebrew, Hebrews 셈계의 민족, 대개의 경우 이스라엘과 동일시되어, [히브리인](Hebrew)과 [이스라엘인](Israelite)의 명칭은 혼동 사용되고 있다. 성서에서는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히브리 사람으로 불리우고 있는데(창 14:13), 그 어의는 [강 저편에서 온 자]로 전해지고 있다. 또 가나안에 침입하여 통치한 애굽을 괴롭게 한 하비루(Habiru 또는 Apiru)라 불리운 민족과 관계가 있다고 전해진다. 이스라엘이 주로 종교적, 사회적 개념인 경우가 많은데 대하여, 히브리는 주로 민족적, 인종적 개념이다. 신약 성서에서는 [히브리인]은 혈통상 순수한 히브리인에 대하여 쓰고 있어(고후 11:22), 바울은 그것을 자랑하고 있다(빌 3:5).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를 쓰는 사람과, 그리스어 사용은 유대인과 대비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행 6:1).
히브리서 : The Letter to the Hebrews
[영] The Letter to the Hebrews(Epistle to the Hebrews) 신약성서의 서간중의 하나.
1. 본서의 저자-히브리서(히브리인에게 보내는 편지)의 저자가 누구였는지를 구체적으로 시사하는 곳은, 본문 중에 어디에도 찾아 볼 수가 없다. 또 그것에 관한 고대교회의 확실하게 신뢰할 수 있는 전승도 존재치 않는다. 이에 고대의 교부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전자에 관한 갖가지 추측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 바울설-13:23에 언급되어 있는 디모데와의 관련의 일에서 생긴 가장 오랜 것으로, 그리스 및 시리아(수리아) 교회에서는 히브리서를 일찍부터 바울의 서간의 하나로서 정전으로여기고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Clemens 오리게네스의 스승)는, 바울이 히브리어로 쓴 편지를 누가가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이라 생각하고, 오리게네스(Origenes 알렉산드리아학파의 대표적 신학자)는, 바울의 제자의 한 사람이 바울의 사상을 해설하면서 쓴 것일지도모른다고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교부 이레나에우스(Irenaeus) 및 교부 히폴리토스(Hyppolytos) 등은, 바울설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현재까지도 공식견해로서, 이 편지는 가령 간접적이라 해도, 기본적으로 바울 자신에게 유래한 것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바울이 아닌 것은, 문체, 용어, 사고양식 등의 비교에서 쉽게 인정되기 때문에, 바울설을 취하는 현대의 학자는 거의 없다.
(2) 누가설-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사도행전과의 문체의 유사에서, 누가가, 바울에 의해 히브리어로 집필된 편지를 번역한 것이라고 추측했는데, 오리게네스도 누가설의 존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 편지는 결코 번역이 아니라, 또 문체 및 용어, 또 신학사상도 사도행전과는 달라, 양자를 동일 인물의 저술로 보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3) 로마의 클레멘스설-이것도 오리게네스가 알고 있던 설의 하나이다. 확실히 히브리서는몇 곳에서 클레멘스의 제1의 편지(The Epistle of Clemens)와 유사한 데가 있다(예컨대, 히브리 1:3-= I클레멘스 36장, 히브리 10:32= I클레멘스 5:1, 히브리 12:1= I클레멘스 6:2, 히브리 12:9= I클레멘스 59:3). 그러나 그것은 후자가 전자를 알고 있고, 또 양자에게 공동의 교회 전승이 사용되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볼 수 있기에 동일 저자에 의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4) 아볼로설- 이것은 루터(M. Luther)에 의해 세워진 설로, 브리-크(Fr. Bleek), 잔-(Th.Zahn), 맨슨(T. W. Manson), 스피크(C. Spieq) 등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 확실히 아폴로(한글성경에는 아볼로)는 헬레니즘의 교양을 풍부히 몸에 지닌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사람 그리스도인이고, 바울과 함께 언급될 정도로 역량있는 초대 교회의 전도자요 교사였다(고전 1:12,3:4-,16:12). 그러므로 이 편지 같은 격조 높은 설교를 썼으리라는 것은 십분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아폴로만이 그러한 유일한 초기 그리스도 교회의 지도자였던 것은 아니므로, 이폴로설도 단순한 추측에 그친다.
(5) 바나바설-이미 서방교회의 신학자 테르툴리아누스(Tertulianus)가, 바나바를 저자로 하는 당시의 전승을 언급하고 있는데, 현대에도 리겐바하(E. Riggenbach) 및 H. 슈트라트만 등은, 이 설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구브로 출신의 레위인이었던 바나바가(행 4:36,9:27,11:22), 이 편지에 보여지는 구약성서의 율법 및 제의에 대한 그리스도의 탁월성을 논증할 수 있을 만큼 신학적 소양이 깊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다.
(6) 스데반의 제자설-맨슨(T. W. Manson)은 사도행전의 스데반 기록(6:8-7:60)과 히브리서가 공통으로 그 관심을 그리스도인들이 복음 신앙으로 인해 가지고 있던 역사 상황의 위기적 종말성을 말하고 있는데 주목하여, 이 편지를 스데반으로 시작되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세계 전도의 발전중에서 이해하려고 한다. 그에 의하면, 저자는 스데반의 제자들에 의해 그리스도인이 된 무명의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이었으리라는 것이다.
(7) 브리스가(브리스길라)설-독일의 신학자 하르나크(A. Harnach)과 기타의 학자는, 여러가지 이유에서 히브리서의 저자가 브리스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녀는 고향을 떠난 표박의 사람이라는 것(히 6:18,11:8,15), 바다의 여행을 하여 선원의 용어를 알고 있는 것(Katecw(katecho) 배를 지킨다. 굳게 지킨다의 뜻, 13:9), 아이들의 일에 흥미가 있는 것(5:12-, 7:3, 11:11, 23, 12:7), 성전의식의 서술이 실제로 보고 얻은 지식이 아니라는 것, 이탈리아에 지면있는 사람이 있는 것(13:24), 장막에 관한 관심이 있는 것은, 직업이 천막 제조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될만하고, 디모데와 교제가 있는 것(13:23), 바울의 사상적 감화가 있는 것, 여자이기 때문에 무기명으로 썼다는 것, 이러한 제점에서 브리스길라가 저자로 생각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추측뿐이지, 그 이상의 확증은 없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일찍이 오리게네스가 히브리서를 [누가 썼는지는, 다만 하나님 만이 아신다]고 했듯, 실제로, 저자를 구체적으로 확정하기는 불가능하다. 다만 히브리서의 문학적, 신학적 특질에서 보아, 저자는 모름지기 랍비로서의 교육을 받고, 그리스적 교양을 가지며, 철저한 그리스도 십자가 중심의 신앙을 가지고, 복음에 대한 열심과, 영적 능력에 충만하고, 신자 사이에 중시되는 전도자, 또는 교사였다고 보아좋으리라 여겨진다. 또한 만약, 결어 부분이 원작의 것이고, 13:23에 언급되어 있는 디모데가, 바울의 선교 활동의 동행자였다고 하면, 저자는 바울의 제자들의 그룹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다.
2. 본서의 독자-우리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한도에서, 이 편지는 기원 2세기 후반부터[히브리인에게]라는 제명으로 전승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원래 [히브리인] 앞으로 실제 씌어진 것인지, 또는 그 경우의 [히브리인]이란 구체적으로 어떠한 사람들을 가리키는지의 점에 대해서는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알려져 있지 않다. 아마도 이 제명은, 마치 바울서간집의 편집자가 [로마인에게]라든가, [갈리디아인에게]라고 편자의 제명을 붙인 것을 따라, 이 편지의 내용상의 인상을 따라 붙인 것이리라고 할 수도 있다. 그 경우의 [히브리인]이란, 기원 1,2세기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의미하고 있던 바의 [유대인] 혹은 [유대의 그리스도 신자]를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편지의 제명이 본래의 것이 아니라면, 독자가 어떠한 사람이었던가 하는 문제는, 이 전통적인 제명을 일단 떠나, 먼저 편지의 내용에서 검토되지 않으면 안된다.
(1) 유대인 그리스도인 설-본서의 독자가 유대 사람 그리스도인이었다는 것은, 기원 2세기에서 19세기 전반까지 거의 의심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 후, 다음에 말하는 이방인 그리스도인설이 대두하여, 금세기 전반에는 대세를 차지하기에 이르러, 이 설은 약간 쇠했으나, 최근 다시 부활, T.W. 맨슨, 부르-스(F. Bruce), H. 슈트라트만, C. 스피크 등에 의해, 헬레니즘 유대인 그리스도인 설로서 전개되고 있다. 다른 한편, 쿰란 사본의 발견 이래 독자는 엣세네파의 제사장들(다니엘 J. Danielou)혹은 본래 쿰란 종단에 속해 있던 사람들(야-딘 Y.Yadin, 베츠 J. Betz, 코스말라 H. Kosmala)이었던 것이 아닌가고 추측하는 자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반론도 많다(고펜스 J. Coppens, F.F Bruce, 브라운 H. Braun).
(2) 이방인 그리스도인 설-이는 1836년에 뢰-트(M. Roth)가 종래의 전통적인 유대인 그리스도인 설에 반대하여 제창한 것으로서, 그 후 율리허(A. Julicher), 빈디슈( H. Windish), 모퍼트(J.Moffatt), 스코트(E.F. Scott), 쿠스(O. Kuss), 큠멜(W.G. Kummel)등 많은 학자들에 의해 지지되어 오고 있다. 그 근거로서는, 기원 1세기에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도 유대인과 동일하게 구약성서의 권위를 승인하고, 그 율법 및 제의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일, 또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3:12), [죽은 행실]을 회개하는 일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 세례에 관한 교리와 안수에 대한 것,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6:1-2)등의 일은 이방 그리스도인의 문제였음 등이 예거되고 있다. 케-제만(E. Kajemann)같은 이는 더 나아가 그노시스의 배경을 가진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독자로 하여 상정하기도 하는데, 기원 1세기의 그노시스에 관한 문제 자체가 미해결이기 때문에, 비판도 많이 행해져 있다(바레트 C.K. Barrett).
이상으로, 독자에 관해서는 크게 2설로 나뉘어 있는데, 이 편지 중에서 전개되고 있는 논의 및 표현이 유대인 그리스도 신자에 한하지 않고, 오히려 이방인 신자가 대부분으로, [이탈리아의 사람 운운](13:24)이라는 말이 있는데서, 또 기타의 이유에서 로마의 신자였을 것으로 봄도 틀리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전교회가 아니고 그 중의 비교적 소수의 신자들 앞으로 보내진 것인 듯한 면도 있다. 독자가 구체적으로 살던 장소에 대해서도, 로마 이외에 알렉산드리아(회니케 G.Hoennicke, 까두-C.J. Cadoux 등), 또는 안디옥(C. 스피크 등), 키프로스(E. Riggenbach등), 골로새(T.W. Manson 등), 에베소(하워드 W.F. Howard) 등이 예거되고 있는데, 이 편지의 최초의 인용이 클레멘스의 제1의 편지 및 헤르마스의 목자에 보여지고 있는대로, 로마와의 관계가 깊은 것, 또 13:24 의 인사의 말이 이탈리아와 독자와의 관계를 시사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가장 개연성이 높은 것은 로마이다(Th. Zahn, A. Harnack, H. 슈트라트 만,W. Manson 등). 아마도 디아스포라 유대인 그리스도의 소수의 신자단(2:3 참조), 이른바[집의 교회]의 사람들이었으리라고 생각하여도 좋을 것이다.
3. 본서의 연대-이 편지 가운데는 기원 70년의 예루살렘 성전 파괴에 관하여 하등 언급되지않고 있다는 것, 또 네로황제의 박해와 같은 고난의 때를 목전에 하지 않고 있지 않는 것등을 근거로하여, 집필 시기를 기원전 60-70년 등으로 보려는 입장이 있다(W. Manson, C.Speke, F.F. Bruce 등). 그러나 독자가 로마의 신자라고 한다면(이설은 있지만)편지 중에 암시되는 두차례의 신앙의 박해가 네로황제 때(기원 64년)의 것일 가능성이 있고(10:32-34), 후에 오려는 박해(12:1-13)는 도미티아누스 황제시대(재위 81-96)에 관계하는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기타, 95-96년에 기록된 클레멘스의 제1의 편지(후 96)가, 이미 히브리서를 알고 있다는 외증도 있어서, 집필연대는 80-85/90년 사이에 집필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4. 본서의 목적-신앙에 들어온지 얼마되지 않은 독자는 최초의 박해에는 훌륭히 견디었으나(10:32 이하), 때의 경과와, 박해의 장기화로 인하여, 어떤 이는 지치고, 어떤 이는 신앙이 잠드는 경향이 있었다(5:11, 12:3). 혹은 배교하는 자(3:12-14), 타락하여 유대교에, 또 당시 유행인 천사 숭배를 하러 가는 자도 있게 되었다. 이런 때에 새로운 박해가 그들의 위에 오는 것을 본 저자는 그들의 신앙을 깨우치려 복음의 본질을 명시하고, 배교를 경계하며, 신앙을 위한 고난을 위로하고, 신앙의 승리를 보증하기 위해 이 편지를 썼다. 그 목적을 위해 그는 예수의 복음만이 절대무비의 진리임을 논증하고, 역설했던 것이다.
5. 본서의 구조와 내용-히브리서의 구조상의 특질은, 신학적교설의 부분(1:1-14, 2:5-18,3:2-6, 4:12-13, 5:1-10, 6:13-10:18, 11:1-39, 13:8-14)과 실천적 장려의 부분(2:1-4, 3:1, 3:7-4:11, 4:14-16, 5:11-6:12, 10:19-39, 12:1-13:7, 13:15-17)등이 함께 다루어져 있다는 점에 있다. 양자는 서로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의 신학적 교설은 실천적 장려를 근거 짓고, 또 실천을 보다 쉽게하기를 목적으로 하여 전개되어 있다.
(1) 천사 및 모세보다 탁월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해야 하지않겠는가(1:1-4:13)
1. 천사 보다도 탁월한 성자(1:1-2:4)
2. 비천(즉 고난, 시련, 죽으심)에 의해 구원의 업을 이루신 성자(2:5-18)
3. 모세보다도 탁월한 성자(3:1-6)
4. 하나님의 안식의 약속과 하나님의 백성(3:7-4:13)
(2) 참된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을 지키고, 하나님께 가까이 해야않겠는가(4:14-10:31)
1. 참된 대제사장으로의 자격을 채우고 있는 그리스도(4:14-5:10)
2. 하나님의 약속의 확실성(5:11-6:20)
3. 레위계의 제사장(아론계의 대제사장)보다도 탁월한 그리스도이신 대제사장성(7:1-28)
4. 참된 대제사장 그리스도의 참된 성소와 참된제물(8:1-10:18)
5. 신앙고백을 인내로써 지키고, 하나님께 가까이 해야 하지 않겠는가(10:19-31)
(3) 신앙의 창시자, 완성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우러러보면서, 하나님의 백성의 길을 전진해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10:32-13:17)
1. 신앙과 인내의 권면(10:32-39)
2. 구약성서의 역사에 있어서의 증인(11)
3. 하나님의 백성의 신앙의 길(12:1-29)
4. 신앙에 있어서의 구체적 지침(13:1-17)
(4) 결언:원함, 기도, 소식, 인사(13:18-25)
**본서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즉
(1) 예수 그리스도의 인물
1. 서언(1:1-3)
2. 천사보다 승한 예수(1:4-14, 2:5-18)
3. 모세보다 승한 예수(3:1-6)
4. 그 신앙에 기초한 실제적 훈계(2:1-4, 3:7-4:13)
(2) 복음의 본질
1. 구약의 제사장보다 승한 대제사장 예수(4:14-7:28)
2. 구약보다 승한 신약의 중보자 예수(5:1-13)
3. 구약의 의식예배의 불완전과 예수의 십자가 속죄의 완전, 유효, 또는 영원적인 일과의 비교(9:1-10:18)
4. 그것에 관련한 실제적 훈계(5:11-6:12)
(3) 신앙의 원칙에 기초한 실제 문제
1. 신앙의 철저와 유지 및 배교의 경고(10:19-39)
2. 신앙과 실례(11장)
3. 박해, 고난에 대한 격려(12:1-13)
4. 여러 가지 훈계(12:14-13:17)
5. 인사(13:18-25)
6. 본서의 강조점-히브리서는 훌륭한 그리스어로 기록되어 있다. 내용을 개관하면, 천사설, 대제사장 멜기세덱설, 기타 고대 유대의 종교의식의 설명 등이 있어서, 심히 알기 어렵게 느껴지나, 그 정신은 극히 알기 쉽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인물 및 그의 복음이 그들 모든 것보다 뛰어나고 따라서 그를 믿는 자에게는 이미 옛 종교의식이 필요없고, 다만 이 단순한 신앙을 지키면 족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신앙을 강조하여 환난과 박해에 있는 신자를 위로하고 또 격려한 것으로서, 종교의식 같은 것은 다만 그 설명의 재료에 지나지 않는다.
7. 본서의 문학적 성격-본서는, 바울의 편지와 다르게, 처음에 저자 및 수취인의 이름이나인사의 말 등 개인적, 구체적인 언급이 없이 매우 격조 높은 문체에 의한 신학적 교설의 서술로 시작하고 있다.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편지]는 아니다. 그래서 로이스(E.Reuss)를 비롯하여, 브레데(W.Wrede), 다이스만(A.Deismann) 등은, 이를 특정한 독자에게 보내진 편지가 아니라 [서간]이라는 문학양식을 취한 신학논문으로 그리스도 교회에 있어서의 최초 문학 작품이라 보았다. 분명히 히브리서는 문체, 용어, 표현방법, 사고양식 등이 바울의 것과는 현저하게 다른데가 있고, 헬레니즘문화(그리스문화)에 대한 저자의 충분한 소양이 엿보여진다. 그러한 관계로 히브리서는 신약성서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리스어로 기록된 문서라고 말해지고 있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신학논문이나 문학작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공개적, 중성적인 성격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것은 초기 그리스도교회의 지도자로서의 저자의 선교에의 정열과 목회적 배려에 가득차 있고, 또 독자의 구체적인 역사상황 및 실존상황과 실재상황(5:11-, 6:9-, 10:25-,10:32-, 12:4 참조)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그러므로 베르거-(S. Berger, 1797) 이래로, 빈디슈(H. Windisch), 슈트라트 만(H. Strathmann), 비켄하우저-(A. Wikenhauser), 미헬(O. Michel)등 다수의 학자는, 히브리서를 어떤 특정한 교회의 사람들 앞으로 써서 보내진 [설교]로 보고 있다. 사실 그것은 히브리서 저자 자신이 말하고 있듯, [권면의 말](13:22)인 것이다.
- 보충주-
(1) 로이스 Reuss, Edouard Guillaume Eugene 1804. 7. 18-91. 4. 15. 프랑스의 신학자. <<칼빈전집>>(Calvini Opera, 59권, 1863-1900)의 공동편집자.
(2) 빈디슈 Windisch, Hans Ludwig 1881. 4. 25-1935. 11. 8. 독일의 신학자.
[文獻](註解書) Fr. Delitzsch:komm. zum Briefe an die Hebraer, 1857; B.F. Westcott:The Epistle to the Hebrews, 1889; E. Riggenbach:Der Brief an die Hebraer, 1913, 22^2-3; H. Windisch:Der Hebraerbrief, 1913, 31^2;E.F. Scott:The Epistle to the Hebrews, 1924; O.Michel:Der Brief an die Hebraer, 1936, 57, 66^12; W.manson:The Epistle to the Hebrews, 1951 53^2;C. Spieq:L' Epitre aux, Hebreux, I-II, 1952-53;H. Strathmann:Der Brief an die Hebraer, 1963^8;E.F.Bruce:Comm, on the Epistle to the Hebrews, 1964:黑崎幸吉:히브리서 註解, 1953^9;(其他) E.Kasemann:Das wandernde Gottesvolk, 1939, 1961^4; E. Grasser:Der Glaube im Hebraerbrief, 1965:中川秀恭:히브리서 연구, 1957; 新聖書大辭典 pp. 1224-1227, 1971.
히브리어(~語) : Hebrew language
[히,그] tyrib][(ibrith)= @Hbraisti
[영] Hebrew language 히브리인[yrib][i(ibri), @Hbraio", Hebrew]들에 의해 씌어지는 말. 다른 민족의 언어와 구별하기 위해 히브리어라는 명칭이 생겨난 것인데, 구약성서에는[히브리어]라는 표현은 씌어 있지 않고, 이 표현에 최초로 접하는 것은 [벤 시라의 지혜]의 서언의 부분에 있어서의 인용이다(서언 24절). 구약성서에서는 [가나안 방언](사 19:18), 또는[유다방언](왕하 18:26,28,느 13:24)으로 불리고, [아람 방언](왕하 18:26)과 구별되어 있다. 랍비들은 히브리어를 [거룩한 말 vd,Qoh' @/vl](leshon haqqodesh)](the sacred language)이라 불렀다. 바벨론 포로 중, 또는 포로 귀환후 1, 2세기 동안에 유대인은 히브리어가 민중의 일상어로서 서서히 아람어에 대신하게 되었다. 신약시대에는 아람어가 팔레스티나에 있어서의 일상어가 되고, 한편 당시의 국제어로서의 코이네 그리스어(→)가 널리 사용되었지만(→헬라어), 민족감정상으로는 아람어가 즐겨 사용되었다. 바울이 격앙한 유대인의 감정을 진정시키기 위해 히브리어(=아람어)로 변명하여 성공한 것은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행 22:2). 아람어는 히브리어와 동족어로서, 문자도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 발음과 문법적 구조가 조금 다르다(→아람어). 신약성서의 [히브리어] (@Hbrai" dialekto", Hebrew language, Çà 21:40,22:2,26:14,@Hbraisti, in Hebrew, 5:2,19:13,17,20:16,계 9:11,16:16)는 이 아람어를 의미하고 있다. [히브리파 사람들(히브리어를 쓰는 사람들)](행 6:1)은 [헤브라이오이 @Hbraioi(Hebraioi)](히브리인)의 설명적인 역으로서, [헬라파 유대인]들과 대조적인 유대인을 가리키고 있다. 구약성서는 아람어로 기록된 일부분(단 2:4b-7:28, 스 4:8-6:18,7:12-26,렘 10:11,창 31:47에있어서의 2어)을 제외하고는 전부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구약성서 연구에는 히브리어의 지식이 기본적으로 요구된다. 히브리 문자는 알파벳식으로 22자의 조합에 의해 표현되고, 이 알파벳 문자는 전부 자음이다(→알파벳). 원래는 모음부호 없이 읽혀졌는데, 사어(死語)로 되면서부터 진정한 읽기법을 보존하기 위해, 맛소라학파의 노력에 의해서 자외음표가 고안되고, 자음의 상하에 이것을 붙여 전통적인 읽기법을 표시하기에 이르렀다. 오늘의 히브리어 인쇄 성서에 붙여져 있는 맛소라 기호(Massoretic sign)가 그것이고, 이것을 일반적으로 자외음표라 부르고 있다. 히브리문자의 서체는 시내 문자에 보여지는 대로 애굽의 성각문자에서 원형을 취하고, 이것을 간이화 한 것이다. 그것은 게셀의 농사력이나 실로암비문 등에도 보여지고, 히브리어 고서체로서 복고정신을 나타내기 위해 마카비시대의 유대화폐의 명에 새겨지고, 사해사본의 어떤 것에는 신성 4자명 h@hy 이 서체로 쓰고 있다. 지금의 히브리어 인쇄 성서에 씌어져 있는 자체는 [각문자] [ [B'rum] bt;B](kthab merubba'), Square]로도 불리우는데, 이것은 [아람어 문자][ yriWVa' bt;B](kthab 'ashshuri), Aramaean]로도 불리운다. 이 아람어 서체는 전 4세기이후의아람어파피루스에 보여지고 히브리어가 이 서체로 이행한 것은 그 영향에 의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히브리어는 다른 셈어와 한가지로 과학과 철학의 기재에는 적합치 않은데, 정서적, 미적, 종교적 정조의 표현에는 가장 적합한 것으로 되어 있다. 히브리어는 우아함에 있어서 결여되고 있는 것을 그 장엄함에 의해 보완하고 있다. 그 단순, 직절, 웅혼에 의해 인류에 대한 초기의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매체로서는 가장 적합한 것이었다.
히브리여인, ~여자(~女人, ~女子) : Hebrew woman
[히] [形] tyrib][i(ibrith)
[영] Hebrew woman 히브리어 형용사 여성형의 원어[이브리오-스]는 히브리인 여성을 가리키는 말로서, 히브리 조산부(산파)에 대해(출 1:15,16,19), 미리암의 어머니에 대해(출 2:7), 동족에게 팔렸던 경우의 히브리 여자에 대해(신 15:12), 각각 씌어져 있다.
히브리인 복음서(~福音書) : Gospel of the Hebrews
[영] Gospel of the Hebrews 신약외전에 포함된 복음서의 하나.→외전(신약)
히스기 :Hezeki, Hizki(인명)
(yqiz]ji, Hezeki, AV., Hizki, RV.,) 「나의 힘」
베냐민 사람 엘바알의 아들이다(대상 8:17).
히스기야 : Hezekiah(인명)
(hY;qz]ji, Hezekiah, JExekiva") 「여호와는 강하게 하심」
[1]유대 왕이다(BC715-687, 6년 재위). 유대 왕국의 가장 위대한 왕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명성은 종교적 측면과 정치˙군사적 면에 걸쳐 극히 정력적인 활동에 의하여 얻어졌다. 구약성경 중 세 책이 그의 활동을 중시하고 꽤 자상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왕하 18-20장,사36-39장,대하29-32장).열왕기와이사야서는 두세 가지 점(히스기야의 병 회복때의 기도, 사 38장등)을제외하면대체적으로 같으나, 역대기는 히스기야에 의한 종교 개혁의 상황을 세부에 이르기까지 보도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의 부친 아하스가BC 716/15년에 죽고 대신 왕이 된 그의 치세는 29년이었다(대하 18:2). 제 14년에 앗수르의 침략이 있었고,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왕하 20:1,사 38:1)하나님께 기도한바 응답을 받아 15년간이나 더 연명하게 되었다. 따라서 BC 687/6년까지 그의 치세는 계속되었다. 히스기야의 부친 아하스가 수리아, 에브라임에 대항하기 위해 앗수르의 원조를 구한 것으로써 남왕조의 이교적 색채는 급속히 짙어져 갔다(왕하 16:7-18,대하 28:16-26). 선지자 이사야는 이 시대의 이교적 풍습을 신랄하게 공격하고 있다(사 2:6-,8:16-등). 히스기야는 즉위하자마자 종교 개혁을 착수했다(대하 26:2-). 그는 아하스에 의해 닫겨져 있던 성전의 문을 열고 이것을 수리하였다. 그는 레위인에게 명하여 전을 정결하게 하였다. 그 후 성전에 있어서 올바른 예배가 드려졌다. 그는 또 유월절을 부활시켰다. 이것은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진 이래최대의 제사였다(대하 30:26). 이 제사에는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으로 "앗수르 왕의 손에서 벗어난 자"(대하 30:6)도 초청되어 그 일부는 기꺼이 이에 참가했다(대하 30:10,11,왕하 17:25-28). 이 유월절 제사 후 사람들은 유다 제성읍에 있는 주상(柱像)이나 목상을 부숴버리고, 유다˙베냐민˙에브라임˙므낫세에 이르기까지산당과 제단을 없애 버렸다(대하 31:1,왕하 18:4). 히스기야는 또 모세의 놋뱀이 우상 예배의 대상이 되어 있었으므로 이것마저 제거해 버린만큼 종교 개혁에 열심을 다하였다. 그의 종교 개혁에 정치가 어떻게 관계했는가는 분명치 않다. 랍사게의 연설중에는 분명히 히스기야의 종교 개혁에 언급한 것으로 보이는 말이 있으나(왕하 18:22-), 앗수르 사람들이 유다에 침입한 것은 이 종교 개혁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다.히스기야가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정치˙군사 문제는 대(對) 앗수르라는 곤란한큰 문제였다. 아하스 시대의 대 앗수르 외교는 유다에게 엄격한 예속의 멍에를 메웠다. 팔레스틴의 다른 작은 나라들도 같은 멍에를 메게 되었다. 그들의 의지는 애굽의 세력이었다. 예루살렘의 궁전에도 항상 친애굽파가 존재했다. 그러나 그 당시 애굽은 국내 문제 때문에 저으기 골치를 앓고 있었다.히스기야히스기야 한편, 앗수르의 동쪽에서는 므로닥발라단 왕이 거느리는 바벨론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 왕은 앗수르와의 항쟁을 위해 동맹국을 구하고 있었다.산헤립의 육각 프리즘열왕기하 20장 및 이사야 39장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히스기야는 이 왕의 사절을 융숭하게 대접하였다. 히스기야는 그 치세의 처음부터 반(反)앗수르의 태도를 분명히 하였다(왕하 18:7). 앗수르의 사르곤 II세(Sargoh II. BC 722-705)의 기록 중에 애굽의 후원을 받아 아스돗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던 반앗수르 동맹을 격파한 것이 기록되고, 그 중에 유다(Ia-u-di)의 이름이 보인다.그는 또 자신을 "먼 유다 나라를 예속시키고 있는 자"라고 부르고 있다. 기록 자체도, 구약성경도, 사르곤에 의한 유다의 침략이 있었다고 기록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히스기야의뜻에 반하여 그의 치세의 처음에 사르곤이 앗수르에 조공을 바치고 예속 관계에 있었던 것은 부정하지 못한다. 그러나 산헤립의 즉위와 동시에 다시 반앗수르 동맹이 형성되어 히스기야도 이에 가맹하였다. 선지자 이사야는 동맹의 힘으로 유다의 안전을 꾀하려고 하는 모든 운동에 반대하였다. 바벨론에서 온 사절을 맞은 히스기야에게 대한이사야의 날카로운 비판이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블레셋의 전 지역은 반앗수르에결합했으나, 에그론 왕 파디(Padi)만은 앗수르에게 충성의 태도를 변치 않았음으로,히스기야는 그의 영지를 공격하여 파디를 사로잡았다(왕하 18:8참조). 그러나 BC 701년에 산헤립은 세번째 원정군을 지휘하여 팔레스틴에 나타났다. 반앗수르 동맹은 간단히 격파되었다. 산헤립의 기록에 의하면, 이 때 유대의 성벽을 가진 46성읍이 빼앗기고, 20,015명의 유대인이 사로잡혔다. 에그론 왕 파디는 석방되고 제성읍을 그에게주었다. 산헤립은 라기스에 진을 치고 있었다. 히스기야는 사자를 보내어 예속을 약속했다. 산헤립은 히스기야에게 과중한 조공을 부과했다. 즉, 은 300 달란트, 금 30 달란트를 부과하니 히스기야 왕은 성전이나 왕궁의 고간에 있는 금은은 물론 성전문의금과 기둥에 입힌 금까지 다 벗겨다가 바쳤던 것이다(왕하 18:14-16). 산헤립은 다시대군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어 히스기야를 "조롱(鳥籠) 속의 새처럼 도성 예루살렘에 가두어 버렸다(산헤립의 비문)". 열왕기하 18:19 이하에 기록된 산헤립의 사자 랍사게는이 때에 파견되었다. 히스기야는 선지자 이사야의 격려를 받고 저항했으나 산헤립의비문은, 앗수르군이 예루살렘을 엄중히히스기야 터널포위한 것은 기록하고 있지만 함락시킨 것은 쓰지 않고 있다. 사자 랍사게는 라기스에서 립나로 옮긴 산헤립에게로 돌아갔다. 성경은 그 원인으로서 애굽(이디오피아) 왕 디르하가의 군대를 막기 위해 산헤립이 이동했기 때문이라고 전하고 있다. 디르하가는 이 때 나이 9세의 소년에 불과하고 왕위에 오른 것은 BC 690년이다.어떤 학자는 산헤립에 의한 제 2회의 유다 침략이 디르하가의 즉위 직후에 있었다고가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원정에 관한 앗수르의 자료도 성경의 보도도 보이지 않는다. 아마 디르하가는 소년이면서 군대를 지휘하여 산헤립의 앗수르군을 견제했을 것이다. 열왕기하 19:8 이하는 BC 701년의 침입의 계속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히스기야는두번째 사자에 의한 항복 권고에 대하여서도 이사야의 격려를 받고 굴복하지 않았다.예루살렘의 기적적 구조에 대하여서는 헤로더토스가 그의 `역사'(Historiai)에 산헤립에 의한 애굽 원정시 애굽에서 일어난 것으로 하고, 앗수르군이 하룻밤새에 싸우지 않고 패멸시킨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Historiai II. 141). 산헤립이 유대에서 돌연니느웨로 철군한 것은 그의 기록에 조공이 "니느웨로 보내어졌다"라는 말에 의하여서도 암시되고 있다. 산헤립의 암살에 관한 열왕기하 19:36, 37의 기사를 유대 침략 실패 직후의 것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침략에 대비하여 예루살렘의 수비를 공고히 하고, 물을 확보하기 위해 성내의 실로암에 저수지를 만들고 기혼에서 거기까지 터널을 건설하여 물을 끌어왔다고 전해진다(대하 32:1-8,30,왕하 20:20,사 22:9).앗수르라는 광포한 대국의 위협하에 있어 히스기야의 행동이 종종 정치적 판단에 의해좌우된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사야의 감화를 받고 보인 여호와에대한 열심은 역대의 왕 중에서도 뛰어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산헤립의 사자의 오만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언사에 대하여 히스기야와 그의 궁정이 보인 태도는현저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왕하 19:1-4). 또 두번째 사자의 방문과 더불어 예루살렘의 위기가 점점 더해갔을 때,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왕하19:15,19)는, 여호와 하나님에게 대한 절대의 신뢰를 보이고 있다. 또 그가 죽을 병에서 고침을 받았을 때 드린 기도(사 38:9-20)도 마찬가지다. 그의 종교 개혁이 먼저 성전에서의 예배의 순화(純化)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그의 시대에 뛰어난 종교 문학이 생산되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대하 29:27-30,사 38:20). 또 잠언 25-29장은 "유다 왕히스기야의 신하들의 편집한 것이니라"(잠 25:1)라고 하였다. 필사(筆寫)나 편집 뿐만아니라 창작도 선지자 이사야의 책을 비롯하여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었다고 생각하여도 좋을 것이다. 역대기는 히스기야를 훨씬 이상화하고 있으나, 이교의 도입자 아합의죽음, 사마리아의 비극적 함락, 예언자의 영향 등을 고려하면 히스기야 시대에 여호와신앙에 열을 올린 그룹에 의한 개혁이 상당히 진척되어 성공했다고 생각해도 이상하지않다.실로암 비문, 히스기야 터널의 완성을 기록한 비문[2]다윗의 자손 느아랴의 아들이다(대상 3:23).
[3]스룹바벨과 같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아델 자손의 조상이다(스 2:16,느 7:21).[4]선지자 스바냐의 증조부이다(습 1:1).
히에라볼리 : Hierapolis(지명)
[그] @Ierapoli"(Hierapolis)
[영] Hierapolis 뜻은 [거룩한 성읍]. 소아시아의 브루기아의 성읍으로, 성서에는 1회 부근의 성읍인 라오디게아, 골로새와 함께 기록되어 있다(골 4:13). 이 세 성읍은 메안데르강(R. Maeander)의 지류 류커스강(R. Lycus)의 유역에 위치하고, 히에라볼리는 북에 있어서 라오디게아에서 9km, 골로새에서 18km 거리로, 서로를 연결하는 3각형으로 되어 있다. 지금의 팜부크 칼레시(Pambuk-Kalessi) 로 불리우는 촌락 가까이에 고지가있다. 히에라볼리는 키벨레(Cybele 大母神)의 신전을 중심으로 발달한 곳으로, 영험이 뚜렷한 것으로 믿어지고 있던 온천과 플루토니움(plutonium 음부의 입구)의 자연현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온천은 탄산석회를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 흐르는 곳에서 응결체를 만든다. 이것은 고대의 지면 위에 두께 5m 내지 7m의 응결층을 만들고 있다. 높이 30m의 벼랑으로 된 종유석의 폭포로 된곳도 있고, 이 기승으로 인해 [면화성] (綿花城 Pambuk-Kalessi)이라는 이름이 있다. 플루토니움(Plutonium 음부의 입구)은 대지에 있는 구멍인데, 그곳에서 발산하는 까스를 마시는 자는 모두 죽는다고 말해졌다(그러나 키벨레의 환관 제사장 만은 면역으로 되어 있었다). 온천은 류마치스에 약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또 염료에 이용되어 여기서는 염직공의 조합이 발달했다. 그리스도교가 여기에 전해진 것은, 에베소에 있어서의 바울의 활동에 힘입고 있다(행 19:10,골 4:13-비교). 이곳은 또한 전도자 빌립이 활동한 곳이고, 또 파피아스(Papias 후 10-130 사도요한의 제자, 히에라폴리스의 주교)의 출신지였다. 320년에는 전시민이 그리스도교인으로 되고, 그 해 플루토니움의 구멍의 입구는 폐쇄되었다. 신전, 극장, 목욕탕 등의 유물이 오늘도 남아 있다. 특히 극장은 소아시아에서 볼 수 있는 완전 한 것의 하나이다.
히에라폴리스 : Hierapolis(지명)
[영] Hierapolis→히에라볼리
히엘 : Hiel(인명)
(laEyji, Hiel)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
아합 왕 시대에 여리고를 재건한벧엘 사람이다(왕상 16:34). 여리고 성을 재건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저주를 받아맏아들과 말째 아들이 죽는다는 여호수아의 저주가 그에게서 실현되었다(수 6:26). 그러나 이 맏아들과 말째 아들을 잃은 것은 여리고 재건의 기초 공사 때에 인신 희생을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게셀과 기타 팔레스틴의 유적에서 발굴된 항아리에 들어있는 어린 아이의 희생의 유물은 이 습관이 행해진 사실을 나타낸다고 한다.
히위족속(~族屬) : Hivites(인명)
[히] yWiji(chiwwi)
[영] Hivites 이스라엘의 가나안 점령 이전에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민족의 하나. 가나안의 아들로 말해져 있다(창 10:17,대상 1:15). 그들은 세겜 등 중앙 팔레스티나에 거주하고 있었는데(수 9:1), 호리 사람(후리사람)과 혈족관계가 있었든지 어떤 경우에는 그것과 동일시할 수도 있다는 설이 있다. 솔로몬 시대에는 대규모의 시설사업 위해, 팔레스티나 거주의 히위 사람 및 타민족을 강제적으로 노역에 종사하게 했다(왕상 9:20-22).
히크소스(힉소스) : Hyksos(인명)
[영] Hyksos 고대 오리엔트의 유목민족.
말과 전차를 가진 강력한 민족으로서, 한 때 애굽을 지배했다. 인종적으로는 페니키아(베니게)인과 관계가 있는 셈족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지고있다. 전 2천년경,시리아와팔레스티나에 침입하여 마침내 나일강 하류에 상륙하고, 삼각주(delta) 지대를 유린했다. 다시 애굽인의 수도 멤피스를 공략하여 제15,16왕조(전1700-1600경)를건설,상(上) 애굽까지도 영유했다. 그러나 전 1600년경테베에서일어난 제17왕조에 위협을 받고, 제18왕조의 창시자인 아모시스(Ahmoses 전 1570-1546)에의해히크소스는 애굽에서 축출되었다. 헬레니즘 시대의 저자들의 예에 따라 유대인 변호가 및 초기의 그리스도교저술가는 히크소스를 요셉과 그 형제들과 동일시 했다. 그래서 그들에 있어서는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인이 애굽에 이주한 것은 히크소스 왕조시대였다고 여긴다.
힉가욘:Higgaion
[히] @/yG;hi(higgayon)
[영] Higgaion 시 9:16의 말미에 [셀라]와 병기되어 있는 음악기호. 힉가욘은 [올린다]는 뜻을 가진 셀라와 한가지로 이곳에서 소리를 높이는 기호로 쓴 것으로 여겨진다. [명상한다]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서 휴식하기 위한 기호라는 해석도 있다.
: Hin
[히] @yhi(hin)
[영] Hin 애굽어에서 온 말로, 뜻은 [항아리]. 올리브유 및 포도주를 다는 액체량의 단위(출 30:24,겔 45:24,46:5,7,11). 밧의 1/6에 해당되고, 3.66리터. 이 단위에 기준하여서 [한 힌의 4분지 1], [한힌의 3분지 1], [기름 반 힌] 등의 표현이 있었다(민 15:4,5,9,10,28:5,7,14 기타).→도량형
힌놈의 아들 : Son of Hinnom(지명)
[히] !Nohi-@B,(ben hinnom)
[영] Son of Hinnom→힌놈의 아들, →힌놈의 골짜기
힌놈의골짜기 : Valley of Hinnom(지명)
(!Nohi, Valley of Hinnom)
예루살렘 남쪽의 골짜기이다(수 15:8,18:16,느 11:30). 여호수아 15:8의 `힌놈의 골짜기'와 동일지이다. 이것은 아라비아어로 와디 에르라바비(Wadi er Rababi)라 부르고 있는 골짜기인데, 욥바 문의 서쪽에 있는 넓고 평탄한 골짜기에서 시작하여 이 문가까이에서 남쪽으로 굽어 약 800m내려가시온의언덕아래 쪽에서 동쪽으로 방향을바꾸고, 기드론 골짜기와 합치고 있다. 이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부근부터 골짜기가깊어지고 나암(裸岩)이 비쭉비쭉 나타나 험한 단애의 양안은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 골짜기의 아래쪽 일부가 도벳인데, 거기서는 악명 높은 이교적인신 희생이 행해졌다(왕하 23:10,대하 28:3,33:6). 그래서 예레미야는 여기가 `살륙의 골짜기'(Valley of Slaughter)라 부를 날이 온다고 말했다(렘 7:32,19:6). 여기서는 성읍의 파기물을 소각하는 불이 늘 타고 있었다고 한다. 이들 관련으로부터 힌놈의 골짜기(게 힌놈)는 신약 시대에 이르러 게헨나(Gehenna), 즉 지옥(마 5:22,막 9:43기타)의 원형으로 되었다. →예루살렘(골짜기).
힐기야 : Hilkiah(인명)
(hY;qil]ji, Hilkiah) 「하나님은 분깃이다」
[1]히스기야 왕의 궁내대신 엘리야김의 부친이다(왕하 18:18,26,37,사 22:20,36:3,22).
[2]요시야 왕 시대의 대제사장으로 살룸의 아들이다. 그가 여호와의 전에서 율법책을발견함으로써 요시야 왕에게 종교 개혁의 필요성을 통감하게 하였다(왕하 22:4-14,23:4,대상 6:13,대하 34:9-22,35:8). 에스라 7:1에는 에스라의 조상으로 되어 있다.
[3]다윗 시대의 사람으로 므라리 자손 암시의 아들이자 이마시야의 부친이다(대상 6:45).
[4]다윗 시대의 사람으로 므라리 자손 호사의 13아들 중 둘째 아들이다(대상 26:11).
[5]에스라가 율법을 낭독했을 때 그 우편에 섰던 사람이다(느 8:4).
[6]스룹바벨과 같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제사장이다(느 12:7). 다음 시대에 동명의 한 족속이 있었다(느 12:21).
[7]선지자 예레미야의 부친이다. 베냐민 땅 아나돗에 살고 있던 제사장이다(렘 1:1).
[8]예레미야와 동시대의 사람인데, 시드기야 왕이 느부갓네살에게 보낸 그마랴의 부친이다(렘 29:3).
힐렌 : Hilen(지명)
(@lEji, Hilen) 「요해」
유대 자손의 성읍이다(대상 6:58).홀론(수 15:51)과 동일지이다. →홀론[1]. 아둘람의 동북쪽 3km 지점에 있는 길벳알린(Khirbet 'Alin)과 동일시된다.
힐렐 : Hillel(인명)
(lLEji, Hillel)「그는 찬양하였다」
비라돈 사람 사사 압돈의 부친이다(삿 12:13,15).
: Streangth, Might, Power
[영] Streangth, Might, Power 자타를 움직이게 하는 근원(원인)이 되는 것(작용).
사람이나 동물의 경우면, 그 체내에 있어서 자기도 움직이고 또한 다른 것들도 움직이게 하는 근원이 되는 작용을 말하고, 물리학의 경우면 물체의 운동 상태를 바꾸게 하는 원인을 일반적으로 [힘]이라 한다. 그런데 성서에 있어서는 이상의 일반적인 힘도 말하고 있지만 보다도특별한 힘, 눈에 보이지 않는 힘과 그 힘의 참된 소유주, 그 힘의 거짓된 소유주에 대해 많이 말하고 있다. 인간의 오감의 영역을 넘는 곳에서는 일반적인 힘보다도 보이지 않는 힘의 작용이 크고, 또 그것은 인간 개개인이나, 전 인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자는 먼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 그리고 그에 적대하는 사단의 보이지 않는 힘들을 염두에 두고, 그 참된 힘의 근원을 알아 그를 신뢰하여 힘을 얻어 싸워야한다.인류 역사상 유명한 일로는 니체(Nietzsche, Fredrich Wilhelm 1844.10.15-1900. 8.25 독일의철학자)는 보이는 힘만 힘으로 알고, 자기의 힘의 복음을 선전하다가 그 생애를 멸망으로 끝냈다. 니체나 바울 모두 [힘의 복음]의 선전자였다. 그 힘의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는 둘이 같은 것 같으나, 그 내용에 있어서는 전혀 반대의 힘의 주장자로서 그 결과는 아주 판이했다. 니체는 자기 속에 있는 무한한 힘의 잠재를 느껴 그 힘의 복음을 선전한 데 대하여, 바울은 자기 힘의 연약함을 느껴 신앙의 힘을 전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결과에 있어서 니체는 자기의 힘의 복음을 전하여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많은 사람을 파멸로 인도하는 자가 된데 대하여 바울은 신앙의 힘의 복음을 전하여 자기도 남도 구원에 이르게 했고, 또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는 멸망에의 인도자, 하나는 구원에의 인도자로서 계속 그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서 일찍이 스룹바벨은 성령에 감동되어 말했다.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라고. 이것은 포로 귀환 후 제2성전의 재건이 난관에 부딪혀 힘을 잃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격려하신 말씀인데, 인간의 힘이나 능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력, 성령의 힘에 의해 된다는 귀한 이상으로서, 연약자로서 무위로 끝날 수 밖에 없던 사람들을 능력의 사람으로 되게 한 말 이기도 하다. 여기에 씌어져 있는 힘과 능이라는 히브리 원어는 [힘]에 있어서는 명사 [하일(카일) lyij'(chayil)]과 [능]에 있어서는 명사 [코-아흐 j'Ko(koach)]이다. [하일]은 [권력], [힘], [능력], [결실]등의 뜻이 있는 말이다. 따라서 두 말의 상위는 그리 생각하지 않아도 좋아도 좋은데 굳이 구별한다면 집단의 조직적인 힘과 개인적 역량이라고도 할 것일지? 요컨대 그것은 인간적 요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 의한 다는 것이다.무엇이 달성될 것인가 하면, 직접적으로는 성전건축인데, 궁극적으로는 그것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재건이다. 이런 것은 인간적 능력, 자기의 힘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만 달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기의 힘이라는 것은 하찮으나, 신앙으로 하나님의 성령에 의지할 때 그 힘은 무한하다 세계대의 큰 일도 해낸다는 것이다. 루-터가 보롬즈(웜즈)의 의회에 소환되어, 세계의 권위를 앞에 놓고, [제가 여기있나이다. 저는 달리 무엇을 해야할지 모릅니다. 하나님, 나를 도우소서 아멘]하고 신앙의 힘을 의지함으로써 세계대의 큰 일을 이루어 낸 것이다. 루-터는 바울이 전한 힘, 신앙의 힘, 그리스도와 그 복음의 힘을 의지하여 세계대의 큰 일을 해 낸 것이다. [자기의 힘이나 능으로서가 아니라, 오직 [나의 힘](복음, 그리스도의 복음,하나님의 성령)에 의지해서이다. 이에 비하여 니체는 무엇을 했는가? 그는 자기를 짊어질 힘마저 없어서 조사하였다. 루터에 의한 힘은, 니체에게 있었던 힘에 비할 수 없이 강대했던 거서이다. [잠잠하여 신뢰(대망)하면 너는 힘을 얻으리라](Durch Stillesein und Hoffen werdet ihr Stark). 이것은 루터의 표어였다. 그가 힘을 얻은 비결은 여기에 있었다. 그런데 니체는 이것을 얻지 못하고 쓰러졌던 것이다. 천하 인간은 그리스도의 안에서만이(행 4:12), 복음의 능력에 의해서만이(롬 1:16) 구원을 얻는 것이다. 헬라어에 있어서 [권능](행 1:8기타), 또는 [능력](행 8:10기타, 고전 1:18기타), [힘](고후 3:3기타, 히 11:11,계 1:16)으로 역된 [두나미스 duvnami"](dynamics)는, [다이나마이트]와 같은 복음의 힘을 보여주는 말로서, 여기서 영어의 [dynamics], [dynamo],[dynamite](다이나마이트) 등이 온 것이다.
힛대:Hiddai(인명)
(yD'ji, Hiddai) 「위엄(威嚴)」
다윗의 30용사 중 한 사람으로 가아스 시냇가에 살았다(삼하 23:30). 역대상 11:32에는 `후래'로 되어 있는데, 히브리 문자를 잘못 읽은게아닌가 한다. →후래.
힛데겔:Hiddekel(지명)
(lq,D,ji, Hiddekel)
힛데겔은 히브리, 헬라어로는 `티그리스'이다(창 2:14,단 10:4). 에덴 동산을 적시고 있던 네 강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유브라데 강과 더불어 메소보다미아의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준 대하이다. →티그리스.
힛타이트:Hittite(인명)
[영] Hittite 힛타이트인의 선조는 헷으로 알려진다(창 23:3,5,7,10).→헷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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